본문 바로가기
여행과 답사/경북

안동 체화정과 조탑동 오층전탑 그리고 권정생 생가

by 취생몽死 2021. 11. 2.
728x90
반응형

- 안동 체화정

 체화정은 시내에서 하회마을 가는 경로 중간에 있기 때문에 관심 있는 사람은 하회마을 답사 때 함께 가면 좋습니다. 저는 하회마을 가는 길은 아니었지만 궁금해서 일부러 다녀와봤습니다. 가는 길은 아리아한테 부탁하니 잘 데려다줬습니다. 도착하면 마당이 있는 집이 한 채 보이는데 거기가 주차장입니다. 희미해져 가는 글씨로 조그맣게 주차장이라고 적힌 팻말이 보입니다.

체화정 주차장

 

차를 대고 올라가다보면 파란 지붕 집이 보이는데 일반 살림집이니 들어가지 말고 옆으로 돌아서 갑니다. 연못이 보이고 조그만 다리를 건너면 체화정이 나옵니다. 여기는 연과 배롱나무가 많은 걸로 봐서 여름이면 더 멋질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파란 대문 집

 

체화정 앞의 연못

 

체화정이 보인다.

 

보물 2051호인 체화정은 조선 후기 이민적이라는 학자가 1761년에 지은 정자로 '체화'는 형제간의 우애와 화목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민적은 만년에 큰형 이민정과 함께 이곳에서 지내면서 형제간의 우애를 다졌다고 하네요.

체화정

 

가운데에는 온돌방, 양옆에는 앞쪽의 툇마루와 연결되는 마루가 있는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으며 온돌방 문 가운데에는 '눈꼽째기창'이라는 작은 창을 더 내서 문을 열지 않고 밖을 내다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연못에는 용도를 알 길 없는 플라스틱 배가 한 척 떠 있습니다. 그리고 정자와 연못 사이의 거리가 짧아서 전체 모습이 카메라에 담기지 않습니다. 전체 모습을 담으려면 연못 뒤로 돌아가야 합니다.

가운데 눈꼽째기창이 보인다.

 

체화정

 

연못 위의 배

 

체화정 정면 모습

 

멀리서 찍은 체화정

 

체화정과 뒷배경

 

- 조탑동 오층전탑과 권정생 선생 생가

 조탑동 오층전탑은 이미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혹시나 해서 가봤더니 역시나 보수공사 중입니다. 여기 처음 갔던 때가 10년은 다 되어 가는 것 같은데 아직도 이러고 있는 걸 보면 탑을 해체는 했는데 조립을 못하는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가기 시작합니다.

조탑동 오층전탑 보수공사 현장

 

보수공사 개요

 

주차장 한쪽은 각종 농기계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땅 위로는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습니다. 주변에 관리자도 없고 보수 인력도 한 명도 보이지 않아 아무리 봐도 보수를 하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조탑동 오층전탑 주변

 

이 탑은 보물 57호로 지정되어 있고 보수 이전 사진을 보니 1층 옥신의 감실과 그 좌우 인왕상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탑은 토축기단 위에 세워져 있으며 화강암과 벽돌을 혼용해서 만든 전탑이라고 합니다. 조탑동 오층전탑은 법흥사지 칠층전탑과 운흥동 오층전탑과는 달리 옥개 상층에 기와가 올라간 흔적은 없습니다.

도대체 보수공사가 끝나기는 하는 건가.

 

이 마을은 나름 관광 자원을 만들어보려고 했던 흔적은 보이는데 외지인들에게는 거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버린 기분이 듭니다. 하지만 조탑동 오층전탑은 볼 수 없지만, 인근에 있는 권정생 선생 생가는 정말 가볼만한 곳입니다. 건물이 예쁜 것도 아니고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권정생이라는 분의 인생과 철학을 오롯이 느껴볼 수 있는 곳입니다.

조탑리 마을 안내도

 

이 골목으로 쭉 따라간다.

 

돌담과 벽화를 지난다.

 

권정생은 「강아지똥」과 「몽실언니」를 쓴 아동문학가로 일본에서 태어나서 해방 이듬해인 1946년에 귀국하여 1947년 12월 조탑리에 정착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강아지똥」은 모르지만 「몽실언니」는 MBC에서 주말드라마로 방영했던 것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이렇게 저에게 권정생은 「몽실언니」로 연결고리가 만들어졌습니다.

권정생의 소박한 삶이 그대로 느껴지는 생가

 

권정생은 1968년 일직교회 문간방에서 종지기로 살았고 그곳에서 「강아지똥」과 「몽실언니」를 썼습니다. 「몽실언니」 인세를 받은 돈에다 조금 더 보내 이 집을 지었으며 마을 청년들이 집터를 다듬고 벽돌을 쌓고 슬레이트 지붕을 덮어주었습니다. 선생은 1983년 가을에 이 집으로 이사를 와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살았고, 사는 동안 마당의 풀도 함부로 베지 않고 자연 그대로 살았습니다.

마당 앞의 돌

선생이 이 집에서 가장 좋아한 건 저녁시간이었고 해거름이면 집 뒤 빌뱅이 언덕에 올라 노을 진 하늘을 보았답니다. 마지막까지 쉼 없이 글을 쓰며 통장에 돈이 점점 쌓여갔지만 선생은 스스로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선뜻 돈을 내놓아도 자신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생활비와 원고지를 사는 것 외에는 쓰지 않았습니다.

개집이 있는 걸로 봐서 강아지도 있었나보다.

선생은 죽기 전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은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도려 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라며 통장에 있는 돈을 "북한의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라고 유언장을 썼습니다.

그 어떤 삐까번쩍하게 지은 생가보다도 아름답다.

 

볏짚이 섞여있는 흙벽

 

 

권정생 선생 생가에서 마을 옆을 돌아 조탑리 오층전탑으로 돌아옵니다. 찾아오는 외지인 하나 없는 조용한 시골 농가 풍경입니다. 그 흔한 시골의 개 짖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아 너무 좋습니다.

이건 뭐지? 담장 밑에서 자라고 있는 신기한 어린 나무.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