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팔공산 국립공원 지정을 기념하여 좀 더 자주 가보려고 하는데 산이 꽤 큰 편이라서 아직도 안 가본 코스가 많다. 가령 예를 들면 오늘 포스팅하고자 하는 한티재와 파계사는 이미 자주 갔던 장소이지만 한 지점에서 한 지점까지 걸어보지는 않은 그런 식이다. 이 코스에 관심을 둔 까닭은 칠곡경북대학교병원에서 한티재까지 운행되는 버스가 있기 때문이었고 이 버스가 없다면 파계사에서 한티재까지 돌아갈 수 있는 교통편은 택시 외에는 없게 된다.
칠곡경북대학교병원에서 한티휴게소로 가는 38번 첫차는 9시 50분에 있고 하루 4회 운행한다. 버스 시간표는 아래 표를 참고하기 바라고 파계사에서 돌아갈 때는 팔공3번을 타고 대구은행연수원에서 내려서 가좌교차로에서 다시 38번 버스를 타야 한다.
회차 | 칠곡경북대학교병원 → 한티휴게소 | 한티휴게소 → 칠곡경북대학교병원 | ||
1 | 09:50 | 10:40 | 10:40 | 11:20 |
2 | 11:30 | 12:15 | 12:15 | 13:00 |
3 | 14:10 | 15:00 | 15:00 | 15:40 |
4 | 16:10 | 17:00 | 17:00 | 17:40 |
이날 원래 집에서 버스를 타고 칠곡경북대학교병원으로 가려고 했지만 그놈의 귀차니즘으로 미적댄 탓에 첫차는 사요나라, 그냥 차 몰고 한티휴게소로 가버렸다. 대신 돌아갈 때는 차량회수를 위해 시간에 맞춰 버스를 꼭 타야 했다. 만약 막차를 놓치게 되면 택시를 타고 가거나(택시비 엄청 많이 나옴) 다음날 한티휴게소에 또 가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가좌삼거리에서 한티재로 팔공산을 넘어가는 도로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선정되어 있기도 한데 숲이 울창하고 고도가 높아 한여름에 에어컨을 끄고 창문만 열고 달려도 전혀 덥지 않다. 젊은 시절 나의 첫차를 몰고 팔공산 순환도로를 넘어 한티재에 처음 갔던 때가 아직도 선하다. 동명면에서 시작되는 팔공산 순환도로와의 첫 대면이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물론 그 감동은 팔공산을 방문하는 횟수가 늘어감에 따라 조금씩 줄기는 했지만 말이다.
잠시 떠난 과거의 기억에서 다시 현재로 돌아오면, 한티휴게소의 변화가 가장 크게 다가온다. 원래 한티휴게소는 건물 내부가 식당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전체가 카페로 바뀌어 있다. 이름은 그냥 카페 한티, 새로 인테리어 되었으니 당연히 깨끗하다. 그리고 카페 오른쪽 귀퉁이 조그만 건물은 매점이다. 카페에서 음료를 한 잔 하고 매점에서 생수를 한 병 사서 출발해 본다.
등산로 입구는 휴게소 바깥, 도로 건너에 쉽게 눈에 띈다. 그런데 입구부터 팔공산 소원길 생태탐방로 조성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다행히 불편하기는 해도 옆길로 올라갈 수는 있게 되어 있다. 한티휴게소 들머리의 좋은 점은 시작점부터 고도가 높기 때문에 바로 능선 구간에 진입한다는 점이다.
한티휴게소에서 파계재까지의 구간은 수목이 우거지고 경사가 완만해 여름에도 덥지 않다. 안 좋은 점이라면 조망이 하나도 없다는 것 정도 되겠다. 조망을 보길 원한다면 동봉 방향으로 좀 더 긴 거리의 등산을 해야 한다. 한티휴게소에서 파계사까지의 코스는 몸에 전혀 무리가 가지 않는 등린이도 가능한 하루 코스이다.
바위가 거의 없는 흙길이 계속되고 잠깐의 오르막이 한 번씩 나오는 게 동네 야산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확실히 고도가 높아서 야산보다는 시원하다. 어떻게 보면 가산에서 팔공산을 잇는 종주 코스 가운데 극히 일부이면서 가장 특색 없는 구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는 그만큼 쉽다는 이야기다.
금세 파계재 1.2km 이정목을 지나 0.5km 이정목에 닿는다. 이곳은 삼갈래봉이라는 곳으로 편의상 이름 지은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챙겨간 간식과 물을 마시고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나 말고도 몇몇 등산객들이 여기서 쉬어갔다.
다시 출발하여 참나무와 소나무로 양분된 숲을 걷다 보니 어느새 파계재 0.4km 이정목에 닿고 도각봉이라는 생소한 이정표도 발견한다. 도각봉이 가리키는 쪽으로 가면 아마도 성철 스님이 구도정진한 성전암이 나올 듯하다.
길 가운데를 막고 선 신기하게 생긴 바위군도 만난다. 이 정도 바위는 팔공산에서 그냥 아기 같은 수준이지만 이 구간에서는 바위 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눈에 확 띈다.
헬기 착륙장처럼 보이는 유일한 양지바른 곳을 지나 또 하나의 바위덩이가 나온 다음 드디어 마지막 갈림길에 닿는다. 여기서 파계사 1.3km를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라간다. 동봉 6.1K를 가리키는 표석이 귀엽다.
여기서 파계사까지는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급경사다. 팔공산의 지형도를 보면 북사면보다 남사면이 훨씬 가파른 것을 볼 수 있는데 북쪽에서 남쪽으로 융기해서 그런 듯하고, 그래서 대구 쪽의 남사면보다 군위, 영천 쪽의 북사면에 계곡이 발달한 것을 볼 수 있다.
아무튼 조심해서 내려가지만 전전날 비가 와서 땅이 물을 그대로 머금고 있고 길도 희미하다. 얼마 내려가지 않아 벌써 계곡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등산로와 계곡물이 겹쳐지면서 여러 차례 길을 잘못 들기도 한다.
파계사의 유례를 살펴보면 9개의 물줄기가 모이는 곳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여기를 내려가다 보면 그 의미가 어느 정도 와닿게 된다. 분명 하나의 계곡인데 여러 개 흩어져 내려오는 물줄기 때문에 조금 지형이 신기하게 느껴지고 굉장히 음습하기도 하다.
파계사 계곡은 정말 요즘말로 '찐'으로 청정계곡이다. 왜냐하면 파계사 위쪽으로 오염원이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상류는 대부분 발목 깊이긴 하지만 맑은 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만한 데도 없다.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내내 깨끗한 계곡물 때문에 너무 기분이 좋다.
조금 많이 찌그러져가는 정자가 보이면 파계사에 거의 다 온 거다. 계곡물을 보면서 내려가서 좋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경사 때문에 피곤하기도 한 게 사실이다. 내려오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이쪽으로 올라가지는 말자는 것이니 말이다.
내려가면서 계곡물은 점차 넓어지고 하나의 물줄기로 바뀌어 간다. 파계사 극락전 앞까지 내려온 계곡물이 너무 깨끗하고 시원하다. 이제 계곡을 벗어나 파계사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보자. 파계사는 너무 많이 와봤기 때문에 대충 한바퀴 둘러봤다.
파계사 앞마당의 영조나무 느티나무는 여전히 멋지고, 원통전, 건칠관음보살좌상 지성, 영산회상도, 설선당, 적묵당, 영조대왕의 도포, 진동루, 기영각 등 많은 수의 문화재가 있어 볼거리도 많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주말만 되면 파계사에 사람들이 엄청 많이 몰렸다. 그러던 게 날이 갈수록 방문객이 점점 줄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주말에도 매우 한산하다. 이건 최근 관광 트렌드가 바뀌면서 파계사만의 문제는 아니고 전국 사찰의 방문객이 같이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으면서 사찰 입장료를 폐지했는데 중들이 머리 잘 썼지, 어차피 입장료 수익은 줄어드는 판국에 주차료는 그대로 받으면서 수입은 보존하고 더럽혀진 조계종 이미지까지 쇄신했으니 그야말로 1석 3조라 하겠다. 절에 갈 일 없는, 세금으로 삥 뜯기는 직장인만 억울할 뿐이다.
갑자기 사설이 길었다. 파계사에는 악감정이 없었고, 법*사, 대*사 같은 일부 사찰이 꼴 보기 싫었는데 어쩌다 보니 여기서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 아무튼 버스를 타려면 파계사에서 파계사집단시설지구가 있는 주차장까지 내려가야 한다.
성전암 가는 도로 입구를 지나면 저수지가 나오는데 여기도 물이 엄청나게 많이 찼다. 둑 쪽으로 물이 폭포수처럼 콸콸 쏟아진다. 참고로 파계사 저수지는 가을 단풍 들었을 때 가보면 상당히 예쁘다.
파계사 일주문을 지나서 계곡물을 구경하며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매표소가 보인다. 파계사도 입장료는 없어졌지만 주차료는 받고 있다. 부러진 현응대사 나무가 보이면 곧 파계사 캠핑장이다. 그리고 여기에 계곡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다. 나머지 위쪽은 상수원 보호구역이라서 펜스가 쳐져있다.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계곡 주위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 파계사 관리사무소와 오토캠핑장을 지나 중대지와 폭포를 구경한 다음 버스정류장으로 간다. 비가 많이 와서 중대지 사이의 폭포에 수량이 많다.
파계사에서 한티재를 가려면 팔공3번을 타고 38번으로 갈아타야 한다. 팔공3번은 파계사 종점 주차장에 서지 않고 중대지 앞 도로 파계사 주차장 입구 앞에 선다. 그리고 대구은행연수원 길 건너에서 내려 가좌교차로까지 걸어간 다음 38번을 타면 되는데 버스 정류장은 두낫디스터브 팔공산(봉평메밀막국수) 길 건너 운동기구 앞에 있다.
막차 시간이랑 한 시간 이상 텀이 생겨 두낫디스터브에서 커피 먹으면서 기다렸다. 토요일이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두낫디스터브 여기 사람 엄청 많이 온다. 2층까지 있는데 매장 넓고 깨끗하고 커피와 빵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다.
집으로 가는 길에 한티순교성지에 들르려고 했는데 입장시간이 5시까지라 들어가지 못하고 입구 사진만 몇 컷 찍고 돌아섰다. 다음에는 신세계병원연수원에서 한티순교성지까지 탐방 계획을 세워볼까 한다.
ps) 파계사 계곡에서 내려올 때 날파리 새끼 하나가 눈으로 카미카제 공격을 해서 버스 타고 내려갈 때까지 계속 눈이 뻑뻑했는데, 어느 순간 눈곱처럼 눈 가쪽으로 눈물과 함께 빠지더라. 인체의 신비란 바로 이런 거. 너무 오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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