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는 근대 문화유산이 많이 남이 있는 도시죠. 지금 리뷰하려는 곳은 계산성당과 3.1 운동 계단, 그리고 제일교회 주변으로 이곳은 대구 골목투어 근대로의 여행 2코스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근대로의 여행 2코스의 시작은 동산병원 청라언덕에서 시작하여 화교학교까지입니다.
첫 목적지 계산성당에 가기 위해 매일신문 빌딩 주차장에 주차를 합니다. 매일신문 주차장은 주말에는 자리가 없는 경우가 많으나 이날은 평일이라서 자리가 꽤 있었습니다. 요즘 거리 두기 제한이 없어지니 골목 투어도 다시 시작되는 것 같고 평일임에도 외국인 포함 사람들이 확실히 많아진 게 느껴졌습니다. 전 계산성당부터 시작해서 코스대로 가지 않고 그냥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녔습니다.
계산성당
매일신문 주차장에서 올라오면 바로 계산성당입니다. 길 건너 제일교회와 우측에 하얀 매일신문 빌딩이 함께 보입니다. 계산성당은 1902년에 건축된 영남 지방 최초의 고딕양식의 성당으로 현재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최초의 계산성당은 1899년 한옥으로 지어졌으나 1901년 지진으로 전소되어 1902년 현재의 서양식 성당을 세운 것이라 합니다.
초가을, 하늘이 가장 푸르를 때 찍은 탓에 붉은 벽돌과 파란 하늘이 너무도 잘 어우러집니다. 사진으로 보기에는 참 평온해 보이지만, 이날 무슨 공사를 하는지 계산성당 주변은 너무 시끄럽고 어수선했습니다. 사실 계산성당 마당에는 뭔가 가리는 게 많아서 사진에 담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그나마 밖으로 나와서 정면 사진을 찍으면 사정이 좀 나아집니다. 계산성당 사진은 횡단보도를 지나 길 건너에서 찍는 게 가장 예쁘게 나오는 것 같고, 3.1 운동 계단 위에서 찍어도 멋지게 나옵니다.
첨두형 아치라고 하나요, 고딕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인 뾰족하게 솟은 지붕이 정면에서 보니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길 건너의 제일교회도 같은 고딕 양식이죠. 그런데 뒤쪽 모습은 고딕 양식이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아무래도 로마네스크가 아닐까 싶은데 서양 건축물은 문외한이라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대구 경북에 남아있는 근대 건축물 가운데에는 계산성당이 가장 예쁜 것 같습니다.
3.1운동계단
계산성당에서 길을 건너 3.1 운동 계단으로 향합니다. 정말 아주 오래전, 강호동의 1박 2일 당시 여기 온 적이 있어서 한때 사람들이 정말 많이 찾아왔었습니다. 도착하니 한 무리의 외국인들이 계단을 내려오면서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히잡을 쓰고 있는 걸로 봐서 아랍에서 오신 분들 같았습니다. 코로나로 침체되어 있던 곳이 오랜만에 활기를 띄는 것 같습니다. 다음에 리뷰를 이어나가겠지만 동산의료원 안의 청라언덕에도 사람들이 많더군요.
외국인들이 모두 지나간 다음에 계단을 올라가 봅니다. 옛날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담장과 계단,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공간이라는 점과 고요한 분위기가 합쳐져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드는 곳입니다. 시멘트와 자갈이 섞여 있는 담장에는 곧 있으면 붉게 물들 파란 담쟁이가 벽을 타고 오르고 있습니다. 3.1운동계단은 당시 사람뿐만 아니라 이륜차, 마차까지 통행할 수 있었다는데, 아마도 계단 양 옆으로 평평하게 다듬어진 곳이 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3.1운동계단을 다 올라오면 곧바로 동산병원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청라언덕과 의료선교박물관 - 챔니스 주택, 블레어 주택, 스윗즈 주택
3.1운동계단을 올라오면 있는, 경상도 사투리로 '산만디'라고 하는 고지대가 바로 청라언덕이며, 청라언덕에는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선교사 주택이 있습니다. 챔니스, 블레어, 스윗즈, 세 채의 선교사 주택은 모두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이 세 주택의 내부도 구경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폐쇄한 지 벌써 2년이 넘어가네요.
청라언덕은 도심 속의 작은 녹지 공간으로 그늘이 많아서 아주 시원하고 주변 경관도 아기자기하게 예쁩니다.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은 챔니스 주택으로 1910년 경에 미국인 선교사들이 거주하기 위해 지은 주택입니다. 'ㅅ'자 지붕으로 된 서양식 건물이 견고하고도 아름답습니다. 챔니스 주택 옆에는 동산병원 구관 현관만 따로 분리해서 이전한 것이 보입니다. 참고로 동산병원은 제중원의 전신이랍니다.
챔니스 주택 옆에는 블레어 주택이 바로 붙어 있는데 역시나 미국인 선교사들이 지은 주택입니다. 외관은 챔니스 주택과 거의 유사한데 중간중간 콘크리트가 섞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블레어 주택을 한 바퀴 돌아 뒤쪽으로 나오는데 고양이 세 마리가 있길래 가까이 가니 도망가네요. 경계를 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멀리 도망가지는 않는, 어느 정도는 사람에 익숙한 듯 보였습니다. 그 틈을 타서 아주 예쁘게 앉아있는 녀석을 사진에 담아봤습니다.
챔니스 주택과 블레어 주택 사이에 청라언덕 노래비가 세워져 있고, 여기에는 박태준 작곡, 이은상 작사인 동무생각 가사가 적혀 있습니다. 작곡가 박태준은 인근에 있는 구 계성 중고등학교 교가를 작곡하기도 했습니다. 챔니스 주택에서 길을 건너 스윗즈 주택으로 가기 위해 당시 선교사와 그 가족들이 묻힌 은혜정원을 지납니다.
스윗즈 주택 역시 외관은 다른 주택과 거의 동일하며 역시 미국인 선교사들이 지은 것입니다. 이 주택은 대구읍성을 철거할 때 나온 안산암의 성돌로 기초를 만들었다고 합니다(챔니스 주택 역시 동일). 아래쪽의 성돌과 그 위의 벽돌의 모습이 확연히 구분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스윗즈 주택 옆에는 과거 선교사들이 심은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능금나무가 있었는데 2천 몇 년도에 고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신 그 자리에는 능금나무의 자식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이 나무의 이름은 의료선교사 존슨과 사과나무라고 하며 심었을 당시 아주 작고 볼품없었는데 지금은 어느새 줄기와 잎이 아주 풍성해진 모습입니다.
청라언덕에서 내려올 때는 올라왔던 길로 가지 않고 제일교회 쪽으로 해서 다시 3.1 운동 계단으로 내려갔습니다. 제일교회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 교회인데 건물의 위용이 정말 대단합니다. 사실 제일교회는 이 인근 어디를 가도 뽀족한 꼭대기가 보일 지경이죠. 아무튼 제일교회를 지나 다시 3.1운동계단으로 나가도 계산성당이 내려다 보입니다.
계산성당과 그 주변 경치가 파란 하늘과 합쳐져 너무 예쁩니다. 계산성당 뒤로는 제일교회 역사관, 그러니까 구 제일교회의 모습도 보입니다. 확실히 계산동과 봉산동 인근은 대구 근대문화유산의 보고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계산성당 뒤에 있는 주차장 출구로 나가서 이상화 고택과 서상돈 고택으로 향합니다.
이상화 고택과 서상돈 고택
계산성당과 이상화 고택은 바로 지척일 정도로 가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화 고택 앞에 있는 고층 아파트인 미소시티 때문에 한낮임에도 고택 안에 해가 들지 않습니다. 덕분에 이상화 고택과 서상돈 고택은 특정 시간대에 늘 이렇게 우중충한 채로 있습니다. 덕분에 사진이 너무 잘 안 나옵니다. 고층 아파트의 폐해를 이렇게 경험하게 되네요.
이상화 고택 옆의 계산예가에 들어가서 잠시 구경하고 나왔다가 다시 이상화 고택을 둘러봅니다. 1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뀐 건 거의 없습니다. 마당 한가운데 이상화 시비와 장독대가 있고 가을이 되니 석류나무에 석류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이상화 고택에서 바로 옆의 서상돈 고택으로 가봅니다. 소문에 의하면 서상돈의 독립운동은 불분명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대구의 중심가이기도 했던 종로 일대 대부분이 서 씨 일가의 땅이었을 정도로 서상돈과 가족들은 부자였는데 이 사람들이 돈을 독립운동에 썼다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히려 부를 축적하려면 일제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생각되네요. 그래서 이상화 고택과는 달리 서상돈 고택은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일교회 역사관 - 구 제일교회
이상화 고택에서 약령시를 지나 구 제일교회로 갑니다. 제일교회 옆에는 약령시한의약박물관이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은 여기도 구경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일교회 벽면은 원래 담쟁이덩굴로 덮여 있었는데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모두 제거된 상태입니다. 담쟁이덩굴이 벽을 타고 뿌리를 내리면서 벽면에 균열이 생긴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담쟁이 덩굴이 있을 때가 지금의 모습보다 더 멋진 건 사실입니다.
이 제일교회 역사관, 구 제일교회는 현재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제일교회 맞은편에는 대구 구 교남 YMCA 회관 건물이 있는데 역시나 근대 건축물로서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내부는 3.1 만세운동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김원일의 마당깊은 집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은 6·25 전쟁 당시 대구를 배경으로 한 소설 <마당깊은 집>을 재구성한 전시 공간으로 역시 계산성당과 가까이 있어서 돌아오는 길에 마지막 행선지로 택했습니다. 원래 마당깊은 집이 여기였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옛 경로당 부지의 한옥을 개조한 거라 하네요.
공간은 그리 크지 않지만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었습니다. 안에는 소설 <마당깊은 집>과 관계된 것들, 그리고 집의 조성 과정, 김원일의 다른 소설과 옛 대구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전시되어 있어 꽤나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다시 계산성당으로 돌아와서 매일신문 빌딩 1층에 있는 커피명가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여유를 가져봅니다. 창밖으로 보는 계산성당의 모습이 꽤나 멋져 보입니다.
'여행과 답사 > 대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상감영공원 대구근대역사관 대구문학관 향촌문화관 (0) | 2022.10.03 |
---|---|
대구 성모당과 성유스티노신학교 관덕정 달성공원 주차 팁 (0) | 2022.10.02 |
비 온 뒤의 대구 비슬산 계곡 풍경 - 유가읍, 옥포읍 (0) | 2022.08.18 |
대구 배롱나무 명소 - 하목정, 육신사, 가실성당, 신숭겸 장군 유적지 (0) | 2022.08.03 |
대구 달성군 가창면 녹동서원 배롱나무꽃과 남지장사 (0) | 2022.08.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