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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답사/경북

안동 이육사문학관과 농암종택

by 취생몽死 2021.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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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육사문학관

양반의 고장 안동하면 역시 하회마을, 도산서원, 병산서원입니다. 이들은 또한 나란히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문화유산이기도 하죠. 하지만 안동에는 이 세 곳 말고도 가볼 만한 데는 많습니다. 그런데 안동 관광지는 한 군데 모여있지 않고 뚝뚝 떨어져 있어 이동이 좀 불편합니다. 이육사문학관과 농암종택은 도산서원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곳으로 사실상 봉화에서 가깝습니다.

이육사문학관


이육사문학관에서 도로를 벗어나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옵니다. 주차장 옆에는 생태공원 바슷하게 만들어져 있는데 특별한 건 없고 뒤로는 밭입니다. 이육사문학관 뒤로는 낙동강 상류가 가로지르고 왕모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습니다.

이육사문학관 주차장

 

뒤로 보이는 산이 왕모산이다.

 

기하하적 구조의 이육사문학관

 

문학관 표석

 

입장료 안내


이육사문학관은 성인 2000원의 입장료가 있습니다. 거의 영상관람료라고 볼 수 있는데 솔직히 다 아는 내용이라 저는 보지 않았습니다. 영상을 보지 않는 걸로 치면 돈이 쬐끔 아깝습니다. 영상을 볼걸 그랬나요?? ㅎㅎ. 전시관 내부는 엄청 깔끔하고 이육사의 생애를 매우 잘 정리해놓았습니다. 전시는 1층에서 시작해서 지하로 이어지게 됩니다.

전시관 입구

 

1층 로비

 

전시관 1층의 시작

 

이육사에게 영향을 끼친 인물들

 

이육사가 살았던 마을의 이름이 원촌마을입니다. 그리고 이 원촌마을에 이육사 문학관이 있습니다. 이육사는 「청포도」와 「광야」 등을 저술한 저항시인으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독립운동가였다는 사실이 알려진 건 비교적 최근인 것 같습니다. 저도 학창 시절에는 이육사를 시인으로만 배웠지 독립운동가로서의 이육사는 들어보지 못했으니까요. 저항시인인 이육사, 한용운, 윤동주 이 세 분 중에 이육사는 언론인으로서 민족의식 고취뿐만 아니라 무장 독립투쟁까지 한 유일한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입니다.

원촌마을

 

유학에 영향을 많이 받은 이육사

 

이육사의 본명은 이원록, 1925년 의열단에 가입하여 일본, 북경, 한국을 오갔으며, 북경사관학교에 입학, 군사교육을 받았습니다. 1927년, 이육사는 북경에서 국내로 귀국하는데, 이때 장진홍 의사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3년형을 받고 대구형무소에 투옥됩니다. 이육사는 투옥 당시 수인번호 264를 부여받는데, 이를 자신의 필명으로 사용하면서 이육사가 됩니다.

이육사의 주요 활동들

 

철창을 형상화해서 만든 전시실

 

수감검호 264

 

 

이육사는 1929년 출옥 후 신문기자로 활동하며 민족의식 고취에 애쓰는데, 1930년 일본을 규탄하는 격문이 나붙는 대구격문투쟁에 이육사는 깊이 관여합니다. 여기서 이육사는 또다시 옥고를 치르게 됩니다. 1932년 이육사는 중국으로 건너가 조선혁명 군사정치간부학교에 입교해서 정치와 군사 등을 배우며 무력투쟁에 의지를 드러냅니다. 1943년 이육사는 국내 항일단체에 도움을 주고자 무기 반입을 시도하였고 어머니와 큰형의 소상을 위해 잠시 귀국하였다가 체포되어 광복을 1년 앞둔 1944년 베이징 감옥에서 순국합니다.

대구격문투쟁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이육사 연보

 

이육사 유고 시집

 

이육사 순국

 

지하로 내려가면 이육사의 최후가 되었던 베이징 형무소의 감방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거기에는 딸 옥비가 본 이육사의 마지막을 간접 체험할 수 있게끔 포승줄과 용수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지하로 내려가는 길

 

베이징 감옥

 

이육사의 마지막

1943년 가을 경, 이육사가 동대문경찰서에 구금되었다가 북경의 일본 총영사관 감옥으로 이송될 때 청량리역에서 딸 옥비가 보았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은 푸른 수의를 입고 포승줄에 묶인 채 용수를 쓴 모습이었다고 한다. 육사는 마지막 길임을 직감했는지 어린 딸 옥비의 볼에 얼굴을 대고 손을 꼭 쥐며 "아빠 다녀오마"라고 말했다고 한다.

포승줄과 용수 등

 

이병희의 증언

 

다시 1층으로.. 이육사 가족 사진. 앗! 내가 나왔네.

 

전시관 밖으로 나옵니다. 이육사의 생애를 경험한 기분, 슬픕니다. 문학관 위에는 큰 건물이 하나 더 있는데 용도는 모르겠습니다. 1층에 식당이 있는 걸 보니 숙소 같기도 하고. 문학관 맞은편에는 이육사의 생가를 복원한 육우당이라는 한옥 건물이 있습니다. 문학관 옆에 이육사 묘소로 가는 산길도 있는데 꽤 거리가 있어서 올라가 보지는 않았습니다. 시간이 남는 분들은 한 번 가보는 것도 괜찮을 듯합니다. 

이육사 문학관 건물

 

문학관 위쪽 건물. 식당도 있는데 영업을 안 하는 듯.

 

육우당 설명

 

'ㅁ'자 형태의 육우당

 

 

- 안동 농암종택

이육사 문학관을 나와서 농암종택으로 향합니다. 농암종택 역시 안동 시내보다 봉화 청량산과 훨씬 가깝습니다. 농암종택은 별 기대치가 없었는데 생각보다 경치가 무척 좋은 곳이었습니다. 낙동강 상류의 깨끗한 물이 농암종택 옆을 흐르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캠핑과 물놀이(10월임에도 불구하고!)를 하고 있었습니다. 꼬불꼬불한 시골길을 따라 기암절벽을 타고 흐르는 낙동강의 풍경이 농암종택으로 가는 길 내내 이어집니다. 

낙동강과 기암 절벽

 

왼쪽 사진 오른쪽 끝에 청량산의 봉우리도 살짝 보인다.

 

주변의 농가 풍경

 

농암종택에 도착하면 집 앞에 주차를 쉽게 할 수 있고, 관광객이 비교적 많이 찾는 종택이라 관람은 편안히 할 수 있습니다. 종택 내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가옥들이 꽤 많았으며, 옆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청량산과 왕모산이 펼쳐진 주변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농암종택 입구

 

이현보와 농암종택

 

농암종택

 

농암 이현보는 1504년(연산군 10) 사간원정언으로(사간원은 조선의 언론기관) 있다가 연산군의 노여움을 사 안동으로 유배된 인물입니다. 1976년 안동댐 건설로 종택이 있던 분천마을이 수몰되어 안동의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는데, 종택과 사당, 긍구당을 영천이씨 문중에서 한 곳으로 옮긴 것이 현재의 농암종택입니다.

입구 앞마당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32호 긍구당

 

농암종택

 

권씨부인과 선반가

 

가옥과 주변 경치가 조화롭다.

 

깎아지른 바위

 

농암종택은 꽤 넓은 부지에 가옥과 사당이 계속 이어집니다. 주변 경치는 강물이 깎아지른 절벽을 만들어내는 전형적인 낙동강 상류 지역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명농당, 농암사당, 분강서원 등의 지정 및 비지정 문화재들이 많이 보입니다. 이곳 농암종택은 사방이 산으로 폭 둘러싸여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뒷배경은 산입니다.

명농당, 비지정 문화재

 

명농당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31호 농암사당. 이현보의 신위가 있다.

 

분강서원

 

분강서원

 

농암종택의 풍경

 

끝까지 걸어가면 종택 옆으로 낙동강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캠핑을 하고 물놀이도 합니다. 이번에 가을 날씨 이상해서 덥다가 갑자기 추워졌죠. 이때는 낮 동안은 덥다가 밤 되면 기온이 떨어지고 하던 때입니다. 낙동강을 보며 주차장으로 돌아갑니다. 여기서 인근에 있는 도산서원도 가깝습니다. 저는 가본 데다 시간이 늦어져 패스했지만 농암종택, 도산서원, 이육사문학관 이렇게 세 군데는 함께 둘러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종택 옆을 흐르는 낙동강

 

물놀이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농암 신도비

 

농암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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