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경기도 쪽은 집에서 워낙 멀어 자주 갈 수는 없지만, 이씨 조선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는 면에서 틈틈이 가게 될 때마다 문화 유적 답사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답사한 곳은 남한산성과 함께 조선의 대표적인 성곽이라 할 수 있는 수원화성입니다. 그런데 수원화성이 워낙 넓은 데다, 좀 늦은 시간에 도착해서 이틀에 걸쳐 모두 둘러보게 되었고, 다행히도 날씨가 너무 좋아서 즐거운 답사가 되었습니다.
수원화성은 몇 군데 권역으로 나누어서 둘러보면 좋은데, 저는 장안공원과 화서공원, 팔달공원과 화성행궁, 그리고 화홍문에서 창룡문에 이르는 동쪽 방면으로 나누어서 둘러봤습니다. 그리고 수원화성은 각 방위 별로 창룡문(동), 화서문(서), 팔달문(남), 장안문(북)이 존재하니 이들을 기억해두는 것도 답사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정조의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과 근대 건축술이 집약되어 축성된 수원화성은 많은 부분 복원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지만 <화성성역의궤>에 의해 원형에 최대한 가깝게 복원한 점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습니다.
장안문에서 화서문, 서북공심돈 - 장안공원, 화서공원
수원화성은 원래 입장료가 있었다고 하던데, 올해 4월부터 화성행궁을 제외하고 전면 무료입장으로 전환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일정 요금의 주차료만 지불하면 수원화성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수원화성 주변에는 곳곳에 주차장이 아주 많이 있는데요, 저는 화홍문공영주차장과 화성행궁공영주차장을 이용했습니다. 요금은 모두 조금씩 차이가 있던데, 화홍문공영주차장이 가장 저렴했습니다.
화홍문공영주차장에서 차를 대고 장안문까지 간 다음에 장안문에서 화서문으로 이동했습니다. 북동포루를 지나 서쪽으로 걷다 보니 이내 북동적대와 장안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장안문은 수원화성의 정문답게 서울 남대문과 비교해도 그 위용이 뒤지지 않을 정도로 당당한 외관을 하고 있습니다. 적의 접근을 막기 위한 바깥의 원형 옹성이 다른 성곽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것이어서 매우 특색 있게 느껴졌습니다.
성벽을 따라 화서문까지 걷는데, 이쪽은 그늘이 전혀 없어 여름에는 못 걷겠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름에 몇 번 오려다가 실패하고 가을에 오게 된 게 다행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기온이 높은 편이어서 좀 더웠습니다. 성벽을 따라 계속 걷다보니 곧이어 화서문과 수원화성 최고의 피사체라 할 수 있는 서북공심돈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화서문에서 아래 광장으로 내려와서 서북공심돈과 화서문을 카메라에 담아 봅니다. 화서문 역시 장안문과 그 구조는 비슷하지만 규모는 작고 옹성 위에 누각은 없는 모습입니다. 성곽시설 중 망루에 해당하는 서북공심돈은 내부에 층을 나누어 사다리를 통해 오르내릴 수 있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기능적인 면뿐만 아니라 심미적으로 매우 아름다운 모양을 하고 있어서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원래는 하루에 모두 수원화성을 둘러볼 계획이었으나 택도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닳은 다음 일정을 다음날로 미루고 다시 장안문으로 돌아갔습니다.
화성행궁에서 팔달공원, 팔달문
행궁은 왕이 도성을 여러날 떠나 있을 경우에 머무는 궁으로 남한산성과 마찬가지로 수원화성에도 행궁이 있습니다. 화성행궁은 입장료 1,500원으로 입장할 수 있으며, 주차는 바로 옆 화성행궁공영주차장을 이용하면 되겠습니다. 저는 이날 여기에 차를 대고 화성행궁과 서장대, 동장대, 방화수류정, 동북공심돈, 창룡문 등 전날 답사하지 못한 나머지 구역을 모두 둘러보았습니다.
화성행궁은 거의 모든 건물이 복원된 것이기 때문에 예외 없이 새 건물 느낌이 많이 나고, 고풍스러운 맛은 없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값에 남한산성 행궁보다는 훨씬 볼만하다는 생각이 들고, 시간만 잘 맞춘다면 무예시범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아무 정보 없이 갔지만 어떻게 운이 들어맞아 무예시범을 볼 수 있었습니다.
광장에서 화성행궁 정문인 신풍루를 지나 몇 개의 문을 통과하면 널찍한 마당이 나오는데 좌측 공간인 유어택 앞에서 무예공연이 펼쳐집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창과 칼 등 여러 무기를 이용해서 다양한 시범을 보이는 시범단의 공연이 꽤 볼 만합니다.
공연이 끝나니 대부분의 입장객들이 쑥 빠져나가 버리고 화성행궁은 어느새 조용해집니다. 화성행궁의 중심건물인 봉수당부터 화성 행궁 내부를 모두 둘러보는데, 마치 미로처럼 요리조리 길이 나 있고, 크고 작은 건물들이 효율적으로 배치되어 있어 고궁 특유의 공간감이 들게 만듭니다.
행궁 뒤쪽으로 나오니 팔달산 위로 산책로가 만들어진 게 보이고 가장 높은 곳에 미로한정이라는 정자 하나가 있습니다. 산책로 주위에는 소나무숲이 빽빽이 들어차 있어 땡볕인 행궁과는 매우 대조적인 분위기이고, 아래로 행궁의 전체적인 모습을 조망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행궁을 나와서 주차장 쪽으로 간 다음에 팔달산으로 난 산책로로 올라갑니다. 정조대왕동상을 지나면 곧바로 성벽이 보이고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탁 트인 공간이 나오는데 바로 팔달산 정상이자 서장대입니다. 군사 지휘소인 서장대에는 화성장대라는 현판이 달린 누각이 설치되어 있고 그 뒤로는 쇠뇌를 쏘는 장소인 서노대가 있습니다. 팔달산 정상이기도 한 서장대는 전망이 정말 좋습니다. 수원 팔달구 쪽의 전망을 감상하며 여기서 한참을 쉬었다 갑니다.
서장대에서 종각을 지나 서포루를 지나면 수원화성관광안내소가 나오는데 그 옆에 매점도 하나 있습니다. 딱 목이 타는 지점에 음료수 한 잔 사 먹기 딱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계속 걷다보면 아담한 크기의 서남암문이 나오고 그 맞은편에는 3.1독립운동기념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서남암문에서 문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고 남포루와 팔달문 방향으로 내려갑니다. 이 길로 내려가면 수원화성 바깥으로 나가게 되는데 팔달문을 지나 화홍문 쪽으로 가기 위함입니다.
내려가다 보니 멀리 팔달문이 보이기 시작하고 더 가까이 내려가니 지동시장까지 내려다 보입니다. 거대한 팔달문은 수원화성의 성벽과 단절된 채 로터리 한가운데 우뚝 서 있습니다. 도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 화홍문에 도착합니다.
화홍문에서 동북공심돈을 거쳐 창룡문까지
수원천은 화홍문 아래에 뚫린 수문을 통해 흘러내려가며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수원화성 전체 구역 가운데 이곳의 풍경이 가장 좋은 듯했습니다. 실제 사람들도 이곳에 가장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성벽을 따라 한 무리의 학생들이 내려오는 것도 보입니다.
아치형의 통로가 나 있는 북암문을 지나 방화수류정이라고 불리는 동북각루에 도착하니 여기서 쉬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보입니다. 이곳은 수원화성의 연못인 용연 가장자리에 설치된 시설로 정자이자 감시용 시설이라고 합니다. 방화수류정에서 성벽 끝으로 동북공심돈이 조망되고 용연과 수원천도 내려다보입니다.
방화수류정에서 체력을 보충한 다음 동북공심돈을 향해 걷습니다. 성벽을 따라 걷는 동안 화성 주변으로 펼쳐지는 경치가 정말 기가 막히게 좋습니다. 시가지와 성곽의 완벽한 조화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동북공심돈에 도착하기 전 동장대가 먼저 나옵니다. 동장대는 이전에 보았던 서장대와 함께 수원화성에 존재하는 두 개의 장대 중 하나입니다. 서장대는 군사 지휘소였던 반면 동장대는 군사 훈련을 하던 장소로 누각 하나와 매우 널찍한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누각 뒤로 돌어가면 외부로 향해 있는 화포가 설치된 것도 볼 수 있습니다.
동장대에서는 창룡문 주변과 동북공심돈도 잘 조망됩니다. 드디어 동북공심돈에 도착, 서북공심돈과는 또 다른 멋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공심돈은 속이 빈 돈대라는 뜻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화성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동북공심돈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창룡문 사이에 만들어진 국궁장이 보입니다.
이제 수원화성 답사의 마지막 시설물인 창룡문으로 내려갑니다. 창룡문은 넓은 잔디밭이 조성되어 있어 4대문 가운데 가장 한가하고 편안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었고 연 날리는 사람도 많이 보였습니다. 동북공심돈의 정면 모습이 파란 하늘과 만나 너무 멋진 모습을 연출합니다.
수원화성박물관
창룡문에서 창룡대로를 따라 팔달구청 쪽으로 가다보면 화성행궁 가기 전에 수원화성박물관이 나옵니다. 답사를 마무리하기 전에 박물관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전시실은 2층에 화성축성실과 화성문화실 두 군데가 있습니다.
화성축성실에는 화성 축성에 관한 것들, 정약용의 거중기에 대한 설명, 그리고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 등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현륭원은 경기도 화성에 있는 조선 왕릉으로 이날 가보려고 했지만 명절 도로 정체가 예상되어 포기했습니다.
화성문화실에는 당시 화성에서 있었던 여러 행사들을 기록한 그림들과 혜경궁 홍씨 회갑연을 묘사한 그림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 다양한 무기들, 서북공심돈의 축소 모형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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