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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답사/경북

괘릉이라고 불리는 경주 원성왕릉

by 취생몽死 2022.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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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에 갔다가 인근에 위치한 원성왕릉에 들렀다. 원성왕릉은 현지에서 괘릉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 일대는 한때 관람료 징수도 하던 관광지였으나 유적 관광이라는 트렌드가 점차 쇠퇴하면서 사람이 잘 찾지 않는 곳으로 변해갔다. 산업도로에서 괘릉 진입로 입구에 있는 괘릉 휴게소만이 그나마 관광지의 명맥을 잇고 있다.

경주 괘릉 혹은 원성왕릉
원성왕릉에 대한 설명

 

지금까지 원성왕릉을 수차례 방문했지만 주차장은 항상 한산했고 방문객이 많았던 것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주변 경치만은 경주의 다른 어떤 곳과 비교해도 절대 꿀리지 않을 정도로 멋지다. 나같이 조용한 곳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불국사에서 사람에 치인 것을 이곳에서 보상받는 기분이다. 가을걷이가 한창인 원성왕릉 주변의 농경지가 그림 같이 예쁘다.

경주 원성왕릉 주차장
원성왕릉 주위 농가 풍경

 

원성왕릉의 능역은 신라 하대 왕들의 무덤 가운데 가장 넓고 완비된 형태를 갖추었다. 봉분 전방에는 4기의 석인상과 4기의 석사자상, 그리고 화표석이 배치되어 있고 주변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심겨 있다. 원성왕릉의 석사자상의 경우 봉분의 네 방위가 아닌 전방에 배치된 점은 다른 능과 구별되는 점이다.

원성왕릉의 능역
원성왕릉의 무인상
원성왕릉의 석사자

 

원성왕릉의 봉분은 십이지신상이 부조된 호석이 돌려져 있고, 왕을 상징하는 회랑과 난간석이 설치되어 있다. 괘릉의 이러한 화려한 점은 조선 후기, 이 능이 통일의 대업을 이룬 문무왕의 능일 것이라는 상상과 연결된다. 거기에는 걸 '괘(掛)'를 사용한 능호가 문무왕이 수중능이라는 것과 부합하여 괘릉이 문무왕릉으로 결정되는 데 한몫했다.

원성왕릉 봉분과 회랑, 상석 등
화표석과 농가 주변 풍경
원성왕릉의 봉분

이는 왕릉이 조영될 당시 이곳에 물웅덩이가 있어서 관을 수면 위에 걸어서 묻었다는 속설이 조선시대에 형성되었는데 괘릉이라는 능호도 여기서 성립된 것이다. 하지만 1967년 동해의 대왕암이 문무왕릉임을 확신하는 조사 결과가 발표됨에 따라 더 이상 괘릉을 문무왕릉으로 인정하지 못하게 되었고, 1973년 왕릉의 주인이 원성왕릉으로 바뀌게 되었었다. 참고로 최치원의 '유당신라국초월산대숭복사비'의 필사본에는 원성왕릉의 위치가 정확히 명시되어 있다.

원성왕릉의 석물들
원성왕릉 능역과 주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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