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은 산 자체가 노천 박물관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왕릉 및 고대 건축물들이 산재해 있는 신라 불교 미술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남산은 비단 문화재뿐만 아니라 금오봉과 고위봉 두 봉우리에서 뻗어 내린 수많은 골짜기를 중심으로 등산로가 형성되어 있어 산행 장소로도 인기가 좋은 산입니다. 삼릉계곡과 용장골 코스는 문화재 답사와 함께 남산의 진면목을 만끽할 수 있는 남산의 가장 대중적이면서 인기가 좋은 산행 코스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번에 다녀간 코스는 남산에서 암릉 산행을 맛볼 수 있는 이무기 능선 코스로, 해발 400m 후반의 산에서 암산이 가진 매력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곳입니다.
출발지점은 용장주차장이며 용장골을 들머리로 삼으면 되겠습니다. 주차장에서 마을로 들어가서 개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탐방안내소 앞에 갈림길이 나오는데 어느 쪽으로 가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다리를 건너 산길로 진행 시 천우사 근처에서 방향을 우측으로 잡고 이무기 능선 쪽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길 따라가면 용장사지를 지나서 금오봉으로 가게 됩니다. 마을을 걷다 보니 이팝나무, 철쭉, 아카시아 등 5월의 꽃들이 각자의 매력을 뽐내고 있습니다.
저는 산길로 가지 않고 천룡사지 방향으로 나 있는 시멘트길로 갔습니다. 산길로 가면 남산의 계곡 중 경관이 가장 수려한 용장계곡을 구경할 수 있고, 시멘트길로 가면 계곡은 없으나 길 찾기가 쉽고, 빨리 갈 수 있습니다. 천우사 가기 전 화장실이 보이면 옆으로 난 등산로로 진입합니다. 가파른 오르막을 계속 오르다 보면 첫 번째 조망점이 나오고 용장리와 배동 일대의 농경지, 산업도로 너머 벽도산, 단석산 등이 조망됩니다.
이무기 능선은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어 남산 등산 코스 중 난이도가 가장 높으며, 고위봉이 494m로 해발고도가 500m가 채 되지 않지만 생각보다 오르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계속해서 오르다보면 고위봉 1.2km 이정표가 나오고 또다시 조망이 펼쳐집니다. 중턱쯤 되는 이 지점에서는 금오봉과 쌍봉이라고 불리는 태봉이 멋지게 조망되고, 암릉과 암봉으로 이루어진 남산의 전경을 보고 있노라면 낮은 산임에도 높이 올라온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아찔하고도 위험한 구간을 간혹 지나면서 암릉을 계속해 오르다보면 이무기 바위에 닿게 됩니다. 이무기 바위에서도 금오봉과 쌍봉의 멋들어진 능선과 서쪽 방면의 단석산, 구미산, 선도산, 벽도산이 조망됩니다. 이무기 바위에서 앞으로 가야 할 고위봉의 봉우리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가야 할 길은 아직도 0.7km, 결코 쉽게 정상을 내어주지 않습니다. 이무기 바위를 지나면 잠시 동안 흙길이 이어지다가 커다란 바위가 앞을 가로막습니다. 로프를 잡고 암벽을 타고 기어오릅니다. 접지력이 좋은 등산화를 신었다면 어렵지 않게 올라갈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가다보면 추락위험구간을 알리는 안내문이 보입니다. 암릉 구간인지라 전망은 매우 좋으나 오른쪽으로 낭떠러지가 형성되어 있어 정말로 발 잘못 디뎌 미끄러지기라도 한다면 뼈도 못 추릴 것 같습니다. 추락위험구간에서도 금오봉의 골짜기와 바람재 능선이 멋지게 조망됩니다. 이곳은 이무기 능선의 마지막 암릉으로 나무 데크를 지나 계단을 오르고 나면 지진대피장소가 나옵니다. 그리고 곧이어 고위봉 정상에 다다르게 됩니다.
고위봉 정상은 소나무와 참나무류에 둘러싸여 조망은 없습니다. 정상석 하나와 분묘의 흔적이 보이고 금오봉과는 달리 쉴만한 벤치 하나 없습니다. 잠시 둘러보다 하산할 길을 정합니다. 이정표 상으로는 용장마을이라고 적힌 열반재 쪽으로 내려가기로 합니다. 산불감시초소가 보이는 길로 내려섭니다. 열반재에 가기 전에도 몇 군데의 조망점이 나오는데, 이곳에서도 내남면 일대의 농경지, 이무기 능선, 금오봉, 태봉, 봉화대 능선, 천룡사지가 매우 잘 조망됩니다. 이무기 능선에서 고위봉을 향해 올라오는 사람들이 개미만 하게 보이고, 천룡사지가 매우 가깝게 내려다보입니다. 천룡사지를 거쳐 틈수골로 하산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열반재로 내려서면 부드러운 흙길이 이어집니다. 갈림길이 나오면 관음사 곰바위 쪽으로 가지 않고 천룡사지 쪽으로 갑니다. 천룡사지 가는 길 이정표가 매우 친절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찾아가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천룡사지에 도착하니 다가오는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뭔가를 하고 있습니다. 천룡사지에는 삼층석탑과 석조 유구가 남아 있으며, 유적지 한쪽에는 녹원정사라는 사찰이 들어서 있습니다. 석탑 주위에 나와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녹원정사의 관계자들이 아닌가 짐작됩니다.
천룡사지 삼층석탑은 보물 문화재로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삼층석탑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중 기단과 3층의 탑신부를 가지고 있으며 노반을 제외한 상륜부는 원래 결실된 상태였으나 최근 복원한 것입니다. 고위봉을 병풍삼아 세워진 탑의 배치가 아주 좋아 보입니다. 그리고 부처님 오신 날 이틀 전이라 석탑 주위에는 연등이 달려 있는 모습입니다. 천룡사지 앞으로 난 길을 따라 틈수골로 내려갑니다.
틈수골로 내려가는 길은 특색없는 동네 야산의 느낌입니다. 내려가는 길에 샘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틈수골에는 물이 그다지 많이 내려오지는 않습니다. 마을에 가까워지면 와룡사라는 절이 하나 있고, 와룡저수지가 보이면 등산은 끝이 납니다. 틈수골에서 용장주차장까지는 걸어가기보다는 버스를 타고 가는 게 좋습니다. 시골 세 정거장이기 때문에 걸어가기에는 거리가 꽤 멉니다. 그리고 아무 버스나 타고 가면 되니까 많이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저도 버스를 타고 용장주차장에서 남산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여행과 답사 > 경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구 근교 산행 청룡산 - 달서구청소년수련관 출발, 수밭골 하산 (0) | 2022.05.24 |
---|---|
경주 남산 산행 - 동남산 칠불암 거쳐 금오봉까지 (0) | 2022.05.10 |
영천의 숨겨진 명소 귀애정 (0) | 2022.04.26 |
영천 자천리 오리장림과 보현산댐공원 (0) | 2022.04.25 |
미리 보는 피서지 군위 동산계곡과 핫플레이스 창평지 (0) | 2022.04.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