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과 창녕 진양 하씨 고택
흐린날 대구와 가까운 곳을 찾아 창녕으로 답사를 갔습니다. 창녕은 출사지로 우포늪이 유명하지만 가볍게 창녕읍내로 향했습니다. 카메라를 수리 맡겨서 스마트폰으로 찍었는데, 스마트폰 카메라가 아무리 발전했다지만 결과물을 보니 아직은 보급형 DSLR 크롭바디 수준에도 못 미치네요. 최신폰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대동소이하리라 봅니다. 소프트웨어적인 방법으로 아웃포커싱 구현했다지만 결과물 보면 그냥 뒷배경 포토샵 블러 처리한 것 같고 조리개 조작해서 촬영해도 피사체 강조는 영 시원찮습니다. 특히 햇빛이 없는 상태에서 황토색 표현은 최악이네요. 포토샵 열어서 하나하나 이미지 보정하기도 짜증납니다.
먼저 답사 시작 지점을 술정리 동 삼층석탑으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술정리 동 삼층석탑이 주차하기가 좋고 여기서 창녕석빙고는 물론 술정리 서 삼층석탑과 심지어 만옥정공원까지도 도보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교동고분군과 송현동고분군도 가야 했기 때문에 창녕석빙고만 도보로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창녕은 의외로 찾아볼 수 있는 신라 문화재가 꽤 있는 경주 외 지역 중 하나입니다. 아마도 대구와 더불어 가장 많지 않을까 생각되는데요.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국보 34호로 최전성기 때의 통일신라 석탑입니다. 이 석탑은 조각 수법이 매우 뛰어나고 안정적인 비율을 가졌으며 경주에 남아있는 석탑과 비교해도 완성도가 밀리지 않습니다. 추정컨데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경주에서 석공 장인을 직접 파견하여 완성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술정리 동 삼층석탑은 창녕 읍내 한 가운데 위치해 있으며 공원으로 만들어져 있는 14,000㎡ 정도 되는 부지는 주택가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곳은 인근 주민들이 산책을 하며 건강 증진 장소로 애용되고 있으며 정작 석탑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이날 날씨가 점심 때 쯤 갠다는 예보가 있었는데 역시나 아침에는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습니다. 동서남북으로 돌아가며 석탑 사진을 찍는데 서쪽 방면으로 화왕산의 산 줄기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술정리 동 삼층석탑의 바로 위에는 국가 민속 문화재 제10호인 창녕 진양 하씨 고택이 있습니다. 이 고택은 조선시대 초가로 진양 하씨가 대를 이어 살아온 살림집입니다. 안채, 사랑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사랑채입니다.
- 창녕 석빙고
술정리 동 삼층석탑에서 북동쪽 방향으로 동명탕 굴뚝과 창녕공설시장을 지나면 조선시대 얼음 창고인 창녕 석빙고가 나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석빙고는 경주 석빙고이며 안동과 대구 현풍에도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석빙고가 있습니다. 창녕 석빙고 역시 보물 310호이며 입구에 있는 석빙고비에는 조선 영조 때인 1742년에 만든 것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석빙고 주변도 공원 같이 주변 정리가 잘 되어 있는데, 이 주변은 평상시에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석빙고 때문에 모이는 것은 아니고 아마도 옆에 있는 창녕공설시장 때문에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석빙고 앞에도 주차장이 있지만 낮 시간에는 주차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되고 술정리 동 삼층석탑에 차를 대고 걸어가는 게 가장 속 편합니다. 걸어가도 어차피 10분도 걸리지 않습니다.
- 창녕 술정리 서 삼층석탑
석빙고에서 술정리 동 삼층석탑으로 돌아와서 차를 몰고 술정리 서 삼층석탑으로 이동합니다. 창녕 술정리 서 삼층석탑은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에 비해서 조각 수법이 퇴화되고 격이 떨어져서 그렇지 이 석탑도 보물 520호입니다. 술정리 동 삼층석탑과는 쌍탑이 아닌 서로 다른 형상의 탑이며, 술정리에 탑이 두 개가 있어 이를 구분짓기 위해 이렇게 이름 붙인 것입니다. 특징으로는 상층기단 가운데 면석에 문이 새겨져 있고 상륜부에는 노반과 복발이 남아있습니다. 제작 시기가 통일신라 말기로 술정리 동 삼층석탑보다 시기가 뒤처집니다.
술정리 서 삼층석탑은 아주 조용한 곳에 위치해 있으며 석탑을 찾아오는 사람은 정말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석탑 바로 옆에 새로 지은 창녕오리정운동장이 있고 주변에 아무데나 차를 세워도 되나 석탑 앞에 따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조용해서 그런지 개인적으로 분위기는 여기가 더 좋습니다. 주변에 주택가가 없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안 사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여기에는 사람이 잘 안 보입니다. 몇 걸음 밑에 있는 운동장 안에는 아이들과 엄마들이 뛰어놀고 있습니다. 술정리 서 삼층석탑에 오니 드디어 해가 뜨네요. 하지만 화왕산 쪽은 여전히 구름으로 가려 있습니다.
- 만옥정공원(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 창녕 퇴천리 삼층석탑, 창녕 객사)
이제 만옥정공원으로 이동합니다. 천사재가노인복지센터 옆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면 바로 옆이 만옥정공원입니다. 여기에는 몇가지 문화재가 산재해 있는데, 창녕 객사(경상남도 유형문화재 231호), 창녕 퇴천리 삼층석탑(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0호), 창녕 척화비(경상남도 문화재자료 218호),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국보 33호)가 그들입니다.
창녕읍 교상리의 작은 언덕 위에 만들어진 만옥정공원은 예전에 봄에 한 번 온 적이 있었는데 벚꽃이 만발했던 기억이 납니다. 언덕 아래를 따라 걷다보면 우선 눈에 띄는 게 20여기의 비석들로 이들은 창녕군 곳곳에 흩어진 현감, 부사, 어사, 관찰사들의 선정비를 한곳에 모아둔 창녕현감비군입니다. 창녕현감비군으로부터 좌측에는 창녕 퇴천리 삼층석탑이 있고 앞에는 창녕 객사가 있습니다.
창녕 객사는 관아의 부속건물 중 하나로 다른 지방에서 온 관원이나 외국의 사신을 묵게 하던 숙소였습니다. 조선 후기의 건축 양식으로 원래 이곳에 있었던 건 아니고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술정리로 옮겼다가 1988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습니다. 객사는 전주에도 있고 안동에 가도 볼 수 있는데 일반적인 객사는 가운데 주 건물이 있고 좌우에 날개집이 붙어있는 구조인데 반해 창녕 객사는 사방이 뚫려있는 맞배지붕 건물 하나 뿐입니다.
창녕 퇴천리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퇴천리 일대 민가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69년 10월에 수습하여 지금의 위치에 복원한 것입니다. 이중기단에 삼층의 탑신부로 구성된 전형적인 신라시대 삼층석탑으로 상륜부는 노반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만옥정공원 가장 서쪽에는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가 있습니다. 이 비는 진흥왕이 창녕 지역을 복속시키면서 세운 것으로 1914년 창녕읍 목마산성 서쪽 기슭에서 발견되어 1924년에 이 자리로 옮겨졌습니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송현동고분군 가는 길에 최초로 발견된 장소로 가는 이정표를 보았습니다. 비의 앞부분은 심하게 닳아 맨들맨들해져 있고 뒷부분은 판독이 가능한 상태로 비문의 첫 머리에 '신사년(辛巳年) 2월 1일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어 561년(진흥왕 22)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북한산비, 황초령비, 마운령비와 달리 '순수(임금이 여러 지역을 둘러보는 일)관경'이라는 표현이 없어 이 비석은 순수비가 아닌 척경비로 부르고 있습니다.
진흥왕 척경비 바로 옆에는 창녕 척화비가 있는 듯 없는 듯 자리하고 있는데, 척화비는 흥선대원군이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서 프랑스군과 미군을 몰아내면서 백성들에게 외국과의 친교를 경고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 세운 비석입니다. 이 역시 다른 곳(창녕읍 교하리로 알려짐)에 있던 것을 광복 후 만옥정공원으로 옮겨 온 것입니다. 흥선대원군의 척화비는 강화도 덕진진에서도 본 적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전쟁 UN전적비인 창녕지구 전승비가 다른 어떤 문화재보다도 눈에 띄게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설명을 읽어보니 북한군은 6·25전쟁 당시 대구를 공격하기 위해 이곳 창녕과 현풍을 교두보로 삼으려 한 듯싶습니다. 우리 어머니 고향이 현풍인데 전쟁 당시 대포 소리가 나면 이불 속에 들어가 덜덜 떨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나네요. 전쟁의 스트레스를 겪은 어머니의 어린 시절을 상상하니 마음 한쪽이 먹먹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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