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술정리삼층석탑과 창녕 석빙고, 만옥정 공원을 답사한 후에 화왕산 서쪽 기슭에 분포되어 있는 창녕 송현동고분군과 창녕 교동고분군 답사를 이어나갔습니다. 두 고분군은 가야의 고분군이며 원래 각각의 국가 사적이었으나 2011년 발굴 및 조사 이후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이라는 이름으로 사적 514호로 재지정되었습니다. 이들 고분군은 일제강점기인 1918년, 발굴 명목으로 대부분 불법적인 도굴이 행해졌습니다.
창녕은 원삼국 시대, 진한의 12개 나라 중 하나인 불사국의 근거지로 송현동고분군과 교동고분군은 이들 세력의 지배층 무덤으로 보고 있습니다. 두 고분군은 위치 상으로도 매우 가까워 직선거리로 불과 600m밖에 되지 않습니다. 무덤 양식은 삼면을 할석으로 쌓아 올리고 개석(뚜껑돌)을 덮어 장방형의 현실(널방)을 만든 다음 뚫려있는 면을 통해 시신을 밀어 넣고, 입구를 막고, 그 위로 봉토를 한 횡구석석실분(앞트기식돌방무덤)입니다. 가야식 묘제인 횡구식석실분은 이 지역이 옛 가야의 땅임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증거입니다.
- 창녕 송현동 마애여래좌상
먼저 송현동고분군으로 갔습니다. 송현동고분군으로 진입하는 입구에는 창화사 이정표가 있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창화사에서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미륵암이라는 암자가 있고 거기에 보물 75호인 창녕 송현동 마애여래좌상이 있으니 고분군으로 가기 전 먼저 보고 갑니다. 차를 가져올 시 송현동고분군은 별도의 주차장이 없으니 이 주변에 적당히 대면 됩니다. 미륵암으로 가까이 가니 댕댕이가 짖어대기 시작합니다. 제가 불상 가까이 가면서 보이지 않으니 잠시 조용하다가 카메라 소리가 들리자 다시 짖기를 반복합니다. 암자 보살님이 그런 댕댕이에게 사진 찍는데 짖어댄다고 바보 같다며 면박을 주십니다 ㅋㅋ.
창녕 송현동 마애여래좌상은 커다랗게 위로 솟은 바위에 새겨 자연광배를 이루었으며, 머리는 소발(민머리), 육계는 적당한 높이를 가졌고 귀는 어깨까지 늘어져 있습니다. 이마 가운데에는 백호의 자국도 뚜렷하며, 어깨가 크고 체구가 당당해보입니다. 법의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편단우견, 수인의 종류는 오른손은 무릎 위에 얹은 채 손가락 끝을 땅으로 향하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해서 배꼽 앞에 놓는 항마촉지인입니다. 이러한 특징들은 경주 석굴암 본존불의 양식을 따르고 있는 것이며 제작 시기는 통일신라 말기로 보고 있습니다.
- 창녕 송현동고분군
송현동 마애여래좌상에서 송현동고분군으로 올라갑니다. 가야 고분군인 고령 지산동고분군, 의성 금성산고분군, 성주 성산동고분군 등과 마찬가지로 송현동고분군 역시 아주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입니다. 해가 갈수록 점점 이들 가야 고분군들이 빛을 보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10여 기의 중형급 이상의 고분과 소형분들 사이로 탐방로가 잘 정돈되어 있어 중복 이동 없이 고분들 구경하기 아주 좋습니다.
대부분의 가야 고분군이 그렇듯 송현동고분군도 산기슭 말단부 경사면을 따라 크고 작은 무덤들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올록볼록한 봉분들이 위치와 방향에 따라서 다르게 보입니다. 대부분이 원형 봉토분의 모습을 하고 있고 표형분인 것도 있으며 또 일부 고분은 봉분 가장자리로 잘 다듬은 할석으로 만든 호석을 두른 모습도 보이네요. 경사면 정상부에 서니 사방 시야가 훤히 트이고 창녕 읍내와 북쪽의 교동 고분군, 그리고 화왕산 정상부가 조망됩니다.
봉분 사이 군데군데 예사롭지 않은 바위들도 보입니다. 자연적으로 있었던 바위는 아닌 것 같고 인위적으로 옮겨온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북쪽 끝으로 가니 교동고분군으로 걸어서 갈 수 있는 산길이 나옵니다. 저는 차를 가져왔기에 이 길은 패스합니다. 송현동고분군 자체는 넓지도 좁지도 않은 답사하기 딱 적당한 넓이를 지니고 있습니다. 부담 없이 산책하기에도 그만인 장소라는 생각이 듭니다.
동쪽 끝 가장 상단에는 다수의 표형분이 있고, 커다란 할석으로 그 아래 무덤과 구분 지어 놓은 건 피장자의 신분의 높낮이를 의미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져봅니다. 그게 아니라면 아래 경사면에 무덤을 조성할 때 삭평하며 생긴 높이 차로 인해 윗부분의 삭평한 터가 폭우 등으로 무너지지 않게 커다란 할석으로 벽을 만든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분군 남쪽으로 내려오니 멀리 화왕산 정상부가 눈에 들어오고 화왕산에서 발원한 계곡물의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 창녕 교동고분군과 창녕박물관
송현동고분군에서 나와서 창녕 교동고분군으로 이동합니다. 교동고분군 주차장 앞에는 창녕박물관이 있고 이 창녕박물관을 기준으로 20번 국도 좌우로 고분군이 넓게 분포합니다.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크게 3개 지구, 즉 송현동 1지구와 교동 1지구, 교동 2지구로 나뉘며 교동 1지구는 박물관 길 건너 구역, 교동 2지구는 박물관쪽 구역입니다. 교동고분군에서는 명덕지에서 가까운 교동 1지구 가장 북쪽 구역만 차로 이동하고 나머지 구역은 도보로 이동하기로 했습니만,,, 계획대로 되지 않고 뭐에 이끌렸는지 나도 모르게 계속 걷게 되어 결국 교동고분군을 한 바퀴 도는 엄청난 일을 해내게 됩니다.
먼저 교동 2지구부터 시작해서 창녕박물관, 그리고 교동 1지구 순으로 이동합니다. 교동 2지구는 창녕박물관에서 북동쪽 경사면을 향해 고분이 이어집니다. 교동고분군 역시 관리와 보존 상태가 매우 좋고 탐방로 구분이 잘 되어 있어 답사하기에 매우 편안합니다.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다 보니 교동 1지구의 봉분과 주차장이 조망됩니다. 창녕박물관에 바로 인접해있는 5기 정도 되는 봉분은 중대형급이고 북동쪽 끝에는 중소형 봉분이 집단적으로 분포해 있습니다. 교동고분군은 한 7~8년 전에 방문했던 거 같은데 그때보다 봉분의 관리 상태가 더 좋아 보입니다.
계속 올라가다 보니 1지구의 가장 북쪽 정상부에 있는 고분도 조망됩니다. 확실히 2지구 끝지점에 있는 고분들은 규모가 작습니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의 무덤이 봉분 가장자리에 호석을 두른 모습입니다. 이게 무덤 조영 당시 원형의 모습인지 아니면 임의로 현대식으로 복원한 건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2지구의 끝에 다다르니 목마산성과 송현동고분군으로 가는 길로 이어집니다. 저는 창녕박물관으로 가야하니 1지구를 가리키는 방향으로 이동합니다. 2지구 끝지점에서는 교동 1지구의 전체 모습이 멋지게 조망됩니다.
이제 창녕박물관으로 내려옵니다. 예전에 왔을 때도 창녕박물관에는 관람객이 없었는데 이날도 아무도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창녕박물관은 코로나 여파가 전혀 없는 곳이라 할 수 있겠죠 ㅎㅎ. 1층 전시관 내부에는 송현동과 교동고분군에서 나온 유물의 종류 및 고분 내부 구조, 창녕 지역 역사의 변천 과정 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하로 내려가니 가야 만화방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전시관이 있네요. 그리고 비화가야 전시실이 작게 마련되어 있습니다. 과거 창녕 지역에 있었던 가야연맹의 이름이 비화가야라고 합니다.
밖으로 나오면 야외 전시실에 여러 시대에 걸쳐 창녕 지역에 조성되었던 고분의 석실 내부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옆에는 계성고분군의 이전·복원관이 만들어져 있어 무덤 내부구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계성고분군 1호분은 국도 5호선 확장 구간에 포함되어 멸실 위기에 놓여있던 대형 봉토분을 호암미술관에 의해 발굴 조사되어 현재의 위치로 이전된 것입니다.
박물관 앞을 지나는 20번 국도를 건너면 교동 1지구가 시작됩니다. 좌측 8기의 중형급 무덤부터 먼저 둘러보고 바로 위쪽의 소형분 쪽으로 이동합니다. 봉분 주위가 정돈이 너무 잘 되어 있습니다. 딱 있을 것만 있는 깔끔하고 심플함 그 자체입니다. 2009년 발굴 조사한 67호분은 봉분의 반을 갈라 내부를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현실의 입구를 외부로 노출시킨 봉분도 있지만 문은 잠겨 있습니다. 멀리 송현동고분군의 일부도 보입니다.
소형분 쪽으로 발길을 옮기니 이문재저수지와 황성만리들이 조망됩니다. 여기서 북서쪽으로 탐방로를 따라 올라가면 잔디길은 흙길로 바뀌고 멀리 봉긋하게 솟아오른 봉분 하나와 그 주위를 호위하듯 둘러싼 작은 고분들이 보입니다. 원래 여기는 차를 타고 명덕체육공원으로 가서 답사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무덤 속의 왕이 나를 부르기나 하듯이 말이죠 ㅋㅋ.
봉긋 솟은 이 고분은 크기도 크지만 언덕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는 입지와 이 무덤을 중심으로 프로펠러 모양을 하고 있는 형세가 예사로워 보이지 않습니다. 확실히 무덤의 주인은 그 시대 최고 계급의 권력자 중 하나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 꼭대기에서는 황성만리들이 더 잘 내려다 보입니다. 고분군의 끝에서 탐방로는 산길로 이어지고 지도를 보아하니 산길을 따라 소형분이 몇 기 더 존재합니다.
어디로 이어지는지도 모른 채 그냥 산길로 진입해서 걷다 보니 길가에 민묘만 보일 뿐 고분은 보이지 않습니다. 너무 멀어지는 것 같아 다시 돌아갈까 하다가 택시 타고 갈 생각하고 그냥 걸었습니다. 드디어 산길을 벗어나 나무다리를 건너니 넓은 잔디밭이 나오고 무덤으로 짐작되는 낮은 봉분도 보입니다. 여기는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문화공원 부지로 봉분 없는 횡구식석실분 16기가 확인된 곳입니다. 이 무덤들은 다른 무덤들보다 시기가 늦은 6~7세기에 만들어진 소형분들이며 구릉 꼭대기에 조성되어 있습니다. 구릉 꼭대기라 그런지 전방의 화왕산도 잘 보이고 인근의 마을이 아주 잘 내려다보입니다.
너무 많이 걸었는지 다리가 너무 아파 공원 아래로 내려와 쉬면서 돌아갈 방도를 생각합니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것은 무리인 거 같고 택시를 부르거나 다른 방법을 찾아야 되는데 지도를 보니 빠른 지름길이 보여서 일단 그쪽으로 가보기로 합니다. 공원 안에는 엄청 키 큰 소나무와 6·25 월남 참전기념비도 있네요. 경북과 경남 쪽은 서쪽보다 전쟁 관련 기념비가 많은 게 확실히 반공 사상의 뿌리가 깊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명덕지를 지나서 농가를 지나 지도에 표시된 길을 따라가면 창녕박물관과 다이렉트로 통하는 것을 확인하고 거리를 재니 10분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쾌재를 부르며 걸어가기 시작합니다. 중간에 엉뚱한 길로 가서 헤매기도 하고 길이 아닌 것 같은 길을 지나기도 하면서 어렵게 찾아가는 중에 길이 신흥사라는 절집 뒷문에서 끊겨버립니다. '으잉~? 모징? 지도를 펼치니 분명 이 길이 맞는데.'
기웃기웃거리다가 그냥 뒷문으로 들어가서 민가처럼 생긴 절 마당을 빙 둘러 지나가니 절 앞문이 나오고 길은 계속 이어지네요? 그리고 그 길은 박물관 쪽으로 향합니다. 절집 사람들이 나를 보고 저 인간 뭐지 했을지도 모릅니다. '뭐 이런 길이 있냐'하며 속으로 되내며 주차장에 도착, 답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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