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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답사/대구

사육신 사당 대구 달성군 육신사와 태고정 그리고 도곡재

by 취생몽死 2021.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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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사

8월 대구 달성의 육신사 가는 길은 배롱나무꽃이 한창이었습니다. 성서를 지나 하빈면으로, 하빈면에서 육신사로 들어서는 충절문에 다다르니 도로 양옆으로 주황색 배롱나무꽃이 늘어서 있습니다. 배롱이라는 이름이 백일홍에서 유래되었다 하여 이 꽃을 목백일홍이라고도 합니다.

육신사
배롱나무꽃이 한창인 육신사 충절문

 

충절문을 지나 얼마 못가 육신사 입구에 도착하니 입구 양옆으로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입구 앞 공터에 주차할 공간이 없다면 오른쪽 담장을 따라 들어가면 넓은 공터가 있으니 거기 주차하면 됩니다.

육신사
육신사 입구

 

육신사
입구에서 들여다본 육신사 내부, 홍살문이 보인다.

 

육신사는 조선 세조 때 단종 복위를 시도하다 발각되어 죽임을 당한 사육신, 박팽년, 성삼문, 이개, 유성원, 하위지, 유응부 등의 위패를 모신 사당입니다. 처음 사당을 지을 때는 박팽년만을 그 후손들이 제사 지냈으나, 후일 나머지 사육신들도 함께 제사 지내게 되었습니다. 원래 이름을 하빈사라고 하였으나 1694년 낙빈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사액서원이 되었다가 1866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습니다. 지금의 육신사는 1975년에 건립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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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사
육신사 안쪽에서 본 홍살문과 입구

 

육신사
육신사 내에 있는 가옥 중 하나

 

박팽년의 후손들만이 박팽년을 제사지낼 수 있었던 이유는 박팽년을 제외한 나머지 사육신의 친자식들은 모두 멸문지화를 당했기 때문인데, 사육신 사건 당시 박팽년의 손자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데는 다음과 같은 전설 같은 일화가 전해집니다.

 

사육신 일가의 부녀자들은 모두 노비가 되고, 당시 박팽년의 아들 박순의 아내는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 만약 아이가 여자이면 노비로 살아남을 수 있고 남자이면 죽임을 당할 운명이었다. 드디어 출산일이 다가오고 박순의 아내는 아이를 낳게 되는데 남자아이가 태어난다. 박순의 아내는 아이를 살릴 꾀를 내는데, 비슷한 시기에 그녀의 여종이 낳은 여자 아이와 바꿔치기를 한 것이다. 이렇게 박팽년의 손자는 박비라는 이름으로 여종의 아들로 살다가 성장 후 자신이 박팽년의 손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성종 때에 이르러 사육신의 신분이 복권되자 박비 역시 사면을 받고 이름을 박일산으로 바꾸게 되었다.

 

정말로 천운이 작용했다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이야기는 단지 문집에 실린 전설일 뿐, 역사적인 사료에 기록된 내용은 아닙니다. 아무리 반역자의 자식이라지만 어머니 뱃속에 있는 태아뿐만 아니라 나이가 어린 유아는 죽이지 않았다는 게 정설입니다.

육신사
멀리서 본 태고정

 

아무튼 박팽년의 손자 박일산은 1479년(성종 10)에 정자 건물인 태고정을 건립합니다. 원래 종가 안에 붙어 있던 별당 건물이었던 태고정은 임진왜란 때 불타 일부만 남은 것을 광해군 때에 다시 지은 것입니다. 태고정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크지 않은 규모의 건물로 정교함이 살아있는 조선 전기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어 보물 55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태고정
보물 554호 태고정

 

태고정
태고정

 

태고정은 정면에 공간이 너무 없어 광각렌즈나 폰카가 아니고서는 정면에서는 건물이 다 나오게 찍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옆으로 기울어진 상태로 좌우에서 많이 찍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건물 정면에는 태고정 현판과 함께 일시루라는 현판이 걸려 있으며 대청에는 윤두수의 한시를 새긴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태고정
태고정 내부

 

태고정
태고정의 측면 모습

 

태고정을 지나 육신사를 천천히 둘러보았습니다. 잔디와 연못, 배롱나무 등으로 잘 꾸며놓은 모습이고 한쪽에는 우물도 있습니다. 이제 도곡재로 가기 위해 육신사를 나옵니다.

육신사
성인문. 이 안에도 건물이 있으나 닫혀 있다.

 

우물
우물

 

육신사
배롱나무 사이로 보이는 태고정

 

도곡재

도곡재는 육신사 입구 바로 옆에 있는 재실로 마당 앞으로 난 통로와 연결된 집에는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육신사를 나오는데 돌담 위에 다람쥐 한 마리를 발견하고 다가가니 도망가지 않고 버티고 앉았습니다. 제가 발을 살짝 헛디뎌 움직임이 커지니 그제야 놀랐는지 줄행랑을 치네요.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줄무늬 다람쥐는 지구 상의 모든 동물들 중 가장 귀여운 동물이 아닐까 합니다.

다람쥐
담장 위의 귀여운 다람쥐

 

도곡재
도곡재의 입구

 

도곡재
마당 앞 통로. 앞에 보이는 집에 사람이 산다.

 

 

도곡재는 도곡공 박종우의 재실로서 1778년(정조 2)에 박팽년의 후손인 서정공 박문현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박종우는 조선 인조 때의 문신으로 병자호란 때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합니다. 도곡재는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의 건물로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3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도곡재
도곡재의 정면

 

도곡재
정측면에서 찍은 도곡재

 

도곡재의 앞마당은 갖가지 꽃들이 만발해 있는 모습입니다. 담장에 늘어진 능소화 외에는 무슨 꽃인지 정확한 이름을 알 수 없지만 여름꽃으로 가득 찬 도곡재 마당이 너무 예쁩니다. 아래 과꽃으로 보이는 빨간색 꽃 외에는 전혀 모르겠네요.

능소화
담장에 핀 능소화

 

꽃
국화과로 보이는데 데이지는 아닌 것 같고..

 

과꽃
과꽃인가요?

 

꽃
이것도 과꽃인가?

 

꽃
아까 앞의 노란 꽃

 

꽃
색깔도 빨강과 분홍이 있다.

 

도곡재
도곡재 옆쪽으로 해가 진다.

 

육신사
도곡재 앞에서 본 육신사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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